오랜만에 읽은 다큐멘터리 소설. 소설의 묘미는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유와 묘사인 것 같다. 읽는 내내 나름대로 그 상황을 그려보았는데 구급차 사이렌, 병원 격리, 사람이 없는 길거리 등 몇몇 부분에선 지금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이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이틀 동안 고통 받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는 부분은 잠시나마 가졌던 희망이 사라져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신부님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성당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겠지요. 그 때문에 늘 진리를 내세워 설교를 하지요. 그러나 자기 교구의 주민들과 자주 접촉을 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어 본 성직자라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비참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하려고 들 겁니다.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줄이는 일에 먼저 손을 쓰겠지요.
→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사회의 안녕에 대해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 보군요. 그러나 사회의 안녕이라는 것은 개인의 행복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개인이 바로 사회를 이루는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선생님을 찾아온 이유는 선생님이 이번 조치를 내리는 데 크게 관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 사람 정도는 딱한 처지를 고려해 주시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도 책임을 느끼지 않으시는군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