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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섯 얼굴

Author
김건종
Fin
2022/05/23
Rate
★★★★
Status
✔️ 완독
2 more properties
나는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툴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자신있지만 억누르려고 하는 편에 가깝다. 웬만해선 눈물도 잘 흘리지 않고, 크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보통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다. 아니,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을 때 감정적인 공감보다는 상황이나 판단에 대한 이해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더 쉽다. 그래서 궁금했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프로세스가.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감이나 우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 사랑, 6개의 챕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덕분에 감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얼굴: 우울

우리는 언제든 ‘우울 자리'에서 ‘편집분열 자리'로, 혹은 뒤에서 앞으로 휘리릭 넘어간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다가 도리어 화내기도 하고, 버럭 화내고 나서는 금방 추스르고 사과하고. 왜 클라인은 하필 ‘우울 자리'라는 ‘우울한' 이름을 이렇게 더 건강해 보이는 상태에 붙였을까?
이 ‘우울 자리'의 핵심은 ‘너 때문이야'라고 하는 대신에 ‘나 때문이야'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말해 내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우울 자리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우울해진다.
우울 자리는 따라서 한편으로 능력이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내가 그에 책임지는 자세는 성숙하고 멋진 일이지만 그 마음자리에 오래 있는 것은 너무도 지치고 힘든 일이라서 언젠가 우리는 거기서 도망칠 수밖에 없다.

우울은 몇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1.
우울한 기분은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가망 없는 일에서 손을 떼게 도와준다. 덕분에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 있게 여유를 얻는다.
2.
우울한 기분은 우리의 ‘맹목적' 낙관주의에 제동을 걸어 목표를 더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말로' 현실적으로 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좌절이지만, 뒤집어보면 사실 자신의 객관적 현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3.
우울증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다른 사람이 나를 돕도록 이끈다.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두 번째 얼굴: 불안

완벽한 통제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불안을 일으키고 그 불안이 다시 통제에 대한 강박을 만든다. 놀이터를 예로 들면 쉽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배우고, 몸과 세상의 접점을 탐험하면서 위험과 안전을 판단하고 감당하는 법을 익힌다. 한 번도 넘어져보지 않고 떨어져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내 팔다리 힘의 한계를 알 수 있겠는가. 통증이 뜨거운 불처럼 확 퍼지면서 울음이 터지는 그 순간을 겪어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타인의 통증에 공감하겠는가.
넘어지기 전에 매번 엄마가 너무 빠르다고 붙잡아버리고, 떨어지기 전에 아빠가 너무 위험하다고 안아준다면 아이는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게 되거나 정반대로 지나친 두려움에 움츠러들게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의 무의식에는 부정이 없다.

우리는 분홍색 북극곰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없다. ‘분홍색 북극곰'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이미 분홍색 북극곰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일이 아니다. 이는 불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불안을 악화시킨다.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거기에 생각으로 기름 붓지 않고 타오르는 불이 스스로 꺼지도록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불안한 생각을 안 하려다가 결국 더 하게 되고, 불안해하는 자신을 자책하다가 더 불안해지지 않고, 이것이 현대에 가장 효과적인 불안 조절법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마음챙김의 핵심이다.

세 번째 얼굴: 분노

분노는 가장 흔한 ‘이차 감정'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원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지우고 덮기 위해서 동원하는 대체 감정이라는 뜻이다.
분노 밑에는 수치, 무력감, 불안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약하다. 내가 못나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여리다. 어쩔 줄 모르겠는 혼란을 있는 그대로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너무 무르다. 그래서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 덕분에 우리를 괴롭히는 저 날카로운 감정들은 잠시 희미해진다. 잠깐 괜찮은 것 같다. 내가 단단한 것 같고 강한 것 같다는 미묘한 확신이 우리를 위로한다.

네 번째 얼굴: 중독

피부가 마취되면 고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도 시원한 바람의 흐름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다. 괴로움을 피하면 기쁨도 사라진다.
언젠가 닥칠 삶의 무시무시함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존재의 형언할 수 없는 풍부함과 힘을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가장자리를 배회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심판이 내릴 때 그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닐 것이다.

여섯 번째 얼굴: 사랑

사랑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자신의 경계와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계선 주변에서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버림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의 처분에 내 존재의 의미가 결정될 수 있는 극도로 수동적이고 그만큼 위험한 자리에 머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