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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Author
김지수, 이어령
Fin
2022/06/11
Rate
★★★★
Status
✔️ 완독
2 more properties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해버리면 패자는 변명거리가 생겨. '내가 지는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이 없어서'라고. 숙명론, 팔자론으로 풀어버리면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났어'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네. 가난해도, 실패해도 ‘팔자' 핑계 대면 그만이거든. 그런데 인생의 마디마다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운명에 책임을 전가하는 건 고약한 버릇이라네. 인간이 노력할 수 있는 세계에 운을 끌어들이면 안 돼. 1점 차로 누군가는 시험에 붙고 떨어지지만 그것도 근접한 수준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야. 세상은 대체로 실력대로 가고 있어. 그래서 나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좋아하지 않아.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자조를 경계해야 하네.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서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풍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네. 잉어가 용문 협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게 등용문이야.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힘들어도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네. 다만 잊지 말게나, 우리가 죽은 물고기가 아니란 걸 말야.
‘백만 명이 죽었다'고 하면 그건 통계야. 백만 명이 죽어도 그건 다 한 사람의 사적 죽음이거든. 그걸 잊으면 안 돼. 이 세상에 백만 명이라는 건 없어. 국가에서, 사회에서 볼 때 백만 명인 거야. 서부 전선도 독일 병사의 시각에서 보니까 ‘서부 전선’인 거잖나. 그게 인식론의 문제야. 철학자들이 말하는 타자성의 철학이 거기서 나오지. ‘타자를 나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그가 있는 그대로 있게 하라.’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네. 타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왜곡해선 안 돼. 일례로 우리는 내가 아플 때 남이 그걸 아는 줄 알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런데 그 아픔은 자기 아픔을 거기다 투영한 것뿐이네.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내가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 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사형수한테는 쓰레기도 아름답게 보인다네. 다시는 못 보니까. 날아다니는 새, 늘 보는 새가 뭐가 신기해? 다시는 못 본다, 저 새를 다시는 못 본다… 내 집 앞마당에 부는 바람이 모공 하나하나까지 스쳐간다네.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코끝의 바람 한 줄기도 허투루 마실 수 없는 거라네. 그래서 사형수는 다 착하게 죽는 거야. 마지막이니까.
뒤늦게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걸.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는 말은 목사님 같은 소리가 아니야.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분노도 그리움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못 견딜 것 같고, 격한 감정이 오래가면 어떻게 살겠나? 격한 감정은 몇 초 지나면 사라져.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그 슬픔은 아주 가끔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네. 슬픔의 감정, 절망의 감정, 분노의 감정이 오래가면 인간은 다 자살하고 말 걸세. 별똥별이 훅하고 떨어지듯 그리움도 슬픔도 그렇게 찰나를 지나가버려. 하지만 ‘왜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까?’ 이런 감정은 오래 남는다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