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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고 싶은 영화는 영화관에 없다

Author
남태우
Fin
2022/03/26
Rate
★★★
Status
✔️ 완독
2 more properties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왓챠와 넷플릭스에 있다. 그리고 난 영화를 좋아한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고,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할 거리를 얻기도 하며 웃음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서 대부분 왓챠나 넷플릭스를 통해서 보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1년 동안 손에 꼽는다. 그럼에도 영화관에 갈 때마다 영화관에는 항상 마블 영화 같은 상업영화만 있을까하는 생각을 은근히 했었다. 막연하게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렇겠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

이것은 단순히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가 아니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제는 똑같이 말하고 똑같은 길을 가는 시대가 아니다. 같은 말을 하는 기성세대, 같은 말을 하는 직장상사, 같은 말을 하는 위정자들,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미래를 이끌어야 미래가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보자

매회 상영이 끝나면 아니 정확히 말해 끝이 나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환하게 불이 켜지고 밝은 미소의 여직원이 스크린 앞에서 연신 인사를 해대면 우리는 그 친절함에 놀라기만 할 뿐 그것이 얼마나 영화가 가지는 예술성을 죽이는 일인지 느낄 틈도 없이 극장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이 놀라운 속도의 인사는 감동에 복받쳐 여운을 느끼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적 진보를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시간을 모조리 빼앗는 월권행위다.
엔딩크레딧에는 그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잘 나와 있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여 명에 이르는 스텝들의 피땀과 영화예술에 대한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단 한 줄의 이름밖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고통을 감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대가로 관객들의 눈길 한 번을 그리워하는데 이것마저도 이윤이라는 가치에 발목 잡힌다면 과연 우리가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어떤 방법으로 그렸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할 기회조차 뺏기고 그저 그림만 보고 미술관에서 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관이 가지는 수익은 생각보다 크다. 짧은 영화의 경우 잘 배치하면 한 회 더 상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책상 서랍 속의 영화'들을 위하여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 작가적 취향이 강한 영화나 저예산 제작으로 인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들일 수 없는 영화들은 어떨까? 이런 영화들은 그야말로 ‘내 책상 서랍 속의 영화'가 되고 마는 것이 영화강국 대한민국의 냉엄한 현실이다. 또한 안정적 재원으로 제작하여 다수의 스크린에 개봉하는 한국영화들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본래적 의미의 다양한 문화로서의 순기능과는 거리가 있다.
한 해에 개봉되는 영화의 90% 이상이 한국과 미국영화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외 수십 개국의 사회상과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
자기의 인생을 영화화한다면 어떤 카피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타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 한 줄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앞으로 그 잣대로 영화를 선택하고 살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비범한 사람의 일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어느 특별한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것이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사회경제적 상황이라는 그릇에 올바로 담기는 그 지점에서 바로 그 특별하다는 의미의 진정성이 있다.

독립영화, 서른 즈음에

독립영화도 이제 관객의 니즈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위로가 필요한데 우린 너무 자기 얘기만 그것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구 장광설을 해대는 건 아닌가 말이다. 작가의 자기표현에만 그칠 때 관객은 어떤 위로와 행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이건 상업영화고 또한 이것이 상업영화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그저 만들기만 하면 되는 자족적인 영화인가 하고 반문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한국의 독립영화는 희소성에 기댄 영화를 양산한 적은 없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제 상업영화는 자신이 많은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았기에 그 대중들을 위해 좀 더 공익적 역할에 눈을 떴으면 하고 독립영화는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다수의 대중을 향해 나아가려는 보다 대중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 독립영화 서른 즈음에 떠오른 단상이다. 이런 작은 자문에 답하면서 가는 것이 또한 그 영화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기에 오늘도 나는 끝없는 자문자답을 되풀이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