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읽었다면 정말 좋았을 책이다. 더 나은 삶의 태도를 더 일찍 갖췄을 텐데.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다.
이 책은 선생님이 수업하듯 진행된다. 챕터가 1교시, 2교시 등 학교처럼 나누어져 있고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할아버지가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작가는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인생을 능동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학생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물건의 풍요로 생활이 어느 정도 만족된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할까? 의식주가 해결되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에어컨, 자동차 등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들을 전부 갖췄다면 사회의 욕구가 어디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물건은 더 이상 욕구 충족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기술이 더욱 발달해서 텔레비전이 1cm로 얇아진다고 해도, 일반 자동차가 시속 400km를 달리게 된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찾는 ‘행복'과는 상관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물건으로는 채울 수 없게 된 행복을 우리는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양상을 나는 ‘성숙사회'리고 부른다. 물건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장사회라면, 그에 비해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숙사회다.
정답이 없는 시대의 ‘의심’하는 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단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이나 텔레비전, 신문이 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머리로 음미하는 일 없이 눈이나 귀로 들어온 정보를 체크하지 않고 정답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완전히 수동적이고 머리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믿는다는 것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면 오늘부터는 확실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바란다. 누군가를 믿거나 무언가를 믿는 것은 훌륭한 태도다. 우리는 친구나 가족, 자신의 미래, 국가의 미래 등 여러 가지를 믿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크리티컬씽킹이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비판적 사고'다.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또는 자신이 내놓은 ‘답’이 정말로 옳은 것인가를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확인 작업을 ‘검증'이라고 한다.
자신을 의심해본다
대개 머리가 굳은 어른들이 그렇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과거의 상식에 매달려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못 본 척한다.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의심하는 눈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말 이대로 좋은가?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무언가 빠뜨린 것은 없는가? 직감이라는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식으로 자신에게 질문 공세를 펼치자. 특히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원래'를 파고드는 것이다.
스토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듣는 쪽이 ‘그게 뭐야?’라며 놀라는 것. 또는 ‘자세히 듣고 싶어', ‘더 얘기해줘'라고 조바심을 내는 것. 나아가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설레게 하는 것. 이러한 구성이나 전개상의 수단을 여기서는 스토리라고 부른다.
‘나'라는 사람을 프레젠테이션하자’
자신의 결점을 숨기지 않고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금 창피한 일이나 부족한 면도 모두 보여준다. 착한 아이의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의 신뢰도 받을 수 없고, 누구도 내 편이 돼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면을 쓰는 게 익숙해지면 오히려 가면을 벗는 게 더욱 두려워지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삶의 방식’을 묻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기존의 ‘공부'가 여러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