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장르의 책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하며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철학 책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강요하는 느낌이 적어서인지 내가 이해되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은 흡수하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야 하는 이유
몸과 마음에 균형이 잡혀 있는 상태를 우리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행복이 긍정성의 충만과 부정성의 부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행복 속에도 부정성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부정적 에너지가 긍정적 에너지를 억누르지 않는 선에서 기분 좋은 균형 잡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정신의 행복은 긍정성이라는 물을 안정적으로 담고 있는 부정성의 견고한 그릇을 전제로 한다.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때 얻어지는 자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자유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1.
다른 사람이 부과한 규칙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세운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2.
사적인 욕망에 봉사하는 규칙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성의 요구에 부합하는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에 따라 나름대로의 규칙과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충실하게 행동한다면,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역설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
→ 역설적이지만 맞는 말이라고 느꼈음.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을듯
→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소소함의 의미를 되찾는 것에 관하여
각 경험은 나름대로 다 독특하다. 우리 삶은, 아무리 평범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아무런 개성 없이 균질적으로 펼쳐진 경험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다.
듀이는 흔한 경험과 하나의 경험이 객관적인 조건들로 인해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어떤 경험을 흔한 경험 혹은 하나의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일을 겪어도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는 능동적인 작용이 없다면 그저 흔한 경험으로 남고 만다. 반면, 아무리 평범한 사건이라고 해도 처음과 끝을 가진 전체로 엮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경험이 된다.
똑같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그 사건에 기계적으로 의식 없이 임하느냐 또는 능동적인 자세로 처음에서 끝으로 향하는 과정을 조직해나가느냐에 따라 경험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같은 일을 해도 어떠한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인간은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알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할 것이고, 알 수 없음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을까
미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네가 필요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건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건강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돌봄, 책임, 존중을 포함한다. 건강한 사랑을 하는 성숙한 인간은 사랑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기를 우선적으로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상대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도와주려 한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해나가는 존재다.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 속에서 큰 의미와 기쁨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자의식을 지워버리고 상대방에 집착함으로써 외로움을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하고 독립적인 인간인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방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의 길을 걸어간다는 연결의 느낌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한다.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
대화의 본질은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데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대화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는 항상 다른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다. 아무리 생각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대화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서로의 말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하고, 혹시 서로의 말을 통해 더 나은 생각으로 나아갈 방법이 있는지를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매끄러운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생각의 차이는 대화의 장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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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다. 나와 정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그런 마음을 품는다. 나와 다른 근본 전제를 품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단순히 나와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보다 우리는 그 사람이 나에게 없는 어떤 결함을 가진,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숙이 품는다. 그러는 순간 대화의 목적은 하나로 정해진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 이 순간부터 더 이상 대화는 없다. 강의와 설교만이 있을 뿐이다.
→ 생각이 다르면 대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화의 태도가 문제이지 생각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